Critique

 

영원의 상속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정경미는 틀에 박힌 일상을 떠나 진정한 일상을 바라볼 수 있을만한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 단초가 바로 ‘창’이다.

첫 번째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간다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장애물을 돌파해간다는것을 말한다. 그에게 있어 창문은 단순히 바깥을 응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답답한 부분을 뚫어 희망과 활력을 북돋는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그의 작품에 나있는 창문은 닫힌 문을 열어 절망을 소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준다. 그에게 있어 화면에 창문을 낸다는 것은 절망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것과 같은 뜻을 지닌다.

작가가 모티브로 삼는 것은 주로 계단과 폭포의 이미지이다. 이것은 <Overflow> 연작으로 발표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멀리서 가까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눈에 밟힌다. 그의작품에서 ‘물’은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의미를 띤다. 이렇듯 생명의 생수가 넘쳐흐르면 영적 갈증에짓눌려 살던 사람들이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러므로 생명의 물은 영적 회복의 상징이며 희망의 표상이다. 작가는 온 세상이 ‘물의 세례’로 인해 회복되며 구속의 온전한 의미를 성취하고자 하는 바람을 <Overflow>연작을 통해 실어냈다. 그리하여 정경미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새로운 연관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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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미의 회화
일상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일상의 회화 

 

심상용(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1. 일상과 그 너머의 ‘더 위대한’ 어떤 힘

  ‘시시하고 권태로운 일상’, 이는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미술사에서 담론의 한 중요한 축을 차지해 온 모티브다. 모던 아트(modern art)는 ‘그저 그런 매일’에 대항해 일어난 일련의 봉기였다.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는 것은 지난세기 내내 소위 ‘현대미술’의 판에 박은 듯한 레토릭이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들을 과대히 평가하고, 관습에 저항하고, 위반과 일탈을 신성시하는 것이 그 모던 독트린의 중심을 이루는 내용이었다. 어떻든 일상보다는 일상에 대한 파격이 미의 시금석으로 정의되었다. 한 때는 초현실과 몽환으로의 이주가 유력한 대안인 듯 여겨지기도 했고, 뉴에이지 같은 현대화된 영지주의(靈地主義)가 환심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도주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일상으로부터의 도주는 결코 성사되지 않았다. 도주를 꿈꿀수록 더욱 옥죄어오는 일상의 한 복판으로 다시 불려 왔을 뿐이다. 뒤에는 지루하고 역겨운 일상이 버티고 있고, 멋지고 신명나는 길은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어떤 오류가 이 도주론에 개입된 것인가? 


 적어도 한 가지, ‘일상’에 대한 한 오해는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아메리칸 팝이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이 감소하지 않을 만큼) 결정적인 방식으로 일상을 미의 시금석으로 격상시켰지만, 이 역시 일상에 대한 오독(誤讀)에 기초하고 있긴 매한가지다. 일상은 시시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폄훼되거나 미의 출처로 과도하게 미화되면서 모던아트의 전통이 나은 거의 모든 오류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 혼돈의 뿌리는 플라톤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곧 성(聖)과 속(俗)의 이원론, 열등한 물질과 탁월한 본질의 이분법 같은 어떤 심각하게 분열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의하자면, 일상은 결코 그것에 머물러 있을만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이와 반대의 견해가 있다. 예컨대 틱낙한이 다음과 같은 말에 표명되어 있는 견해다 : “주위를 돌아보면, 삶은 기적적인 일로 가득하다. 한 잔의 물, 한 줄기 햇살, 나뭇잎, 애벌레, 꽃, 웃음, 빗방울, 모두가 하나의 기적이다.” 하지만 기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본질이 물질계 안으로 개입하는 순간으로, 플라톤의 분열적 이원론의 허점이 폭로되는 순간이다. 이에 대해 마이클 프로스트가 보다 소상히 밝히고 있다.

 

“우리가 석양이 지는 광경이나 보름달을 보기 원하고, 강둑에서 한가로이 거닐거나 산 정상에 앉아있는 것에 끌리는 이유는 자연의 장엄한 경관이 저 우주에 우리보다 더 위대한 어떤 힘이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렀다. 우리는 산을 통해서만 산을 넘어서고, 바다를 통해서만 바다보다 심원한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일상과 일상너머의 진실, 일상의 부조리와 그것을 넘어서는 조리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분열된 둘이 아니다. 저 우주의 힘, 존재를 넘어서는 위대성, 초월적 차원은 이 지상의 순간들, 일상의 모든 모퉁이들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일상은 매일 아침 동틀 녘부터 일몰까지 우리로 그 위대성에 귀 기울이도록 하는 열린 순간들의 연속이다. 신비는 우리가 부딪히며 사는 일상 가운데 편재한다. 진정한 도주의 가능성은 바로 우리의 삶 한복판에 존재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Divine nature)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 포월(蒲月)로서의 일상

 이 매일의 위대성과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둔화된 감각이다. 일상을 시시한 것으로 만드는 실체는 투덜거리는 우리의 훼손된 인식이다. 작가로서 정경미의 자각이 출발하는 지점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일상을 오독함으로써 일상을 넘어서는 길도 잃어버리고 마는 빈곤한 인식의 지평, 바로 그 위에서 (우리 모두의 것인) 가난한 감각을 위한 어떤 감각의 반전을 꾀하는 것, 즉 ‘일상 이상의 일상’, ‘일상 이상을 보여주는 일상의 회화’를 시도하기! 


 정경미의 회화는 그 자체가 일련의 복잡성의 결과다. 그것이 포착된 수많은 일상의 이미지들에 의해 가능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차지하고서라도 말이다. 그것은 하나 이상으로 된 하나며, 무수한 이야기들로 된 이야기다. 그 이미지들은 수많은 장소들에서 포착된 하나의 장소고,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건너온 하나의 시간대다. 그것은 장소의 함축이 허용한 새로운 공간이자 시간의 응축으로부터 연유하는 새로운 시간이다 이 점을 잊지 말자!  이 세계는 전적으로 일상의 소산이지만, 결코 일상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3차원의 공간 너머까지 연장되고, 이 행성의 일반적인 시점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위해 ‘열리기 시작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 이미지들은 수많은 장소와 시간대에서, 즉 존재계로부터 온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신비로운 일상’의 구성을 위해 마치 거대한 퍼즐의 필연적인 조각들로서 찾아진 것들이다. 이 조각들로부터 기적적인 하나의 연계성을 찾아내는 일은 또 다른 복잡성의 과정이다. 그것은 주로 녹록치 않은 노동을 요하는 전사의 과정과 동시에 진행되는데, 이는 일상들로 된 일상 이상의 일상, 권태에 젖은 삶이 아니라 기적의 출처인 삶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구성되고, 차원이 발생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정경미의 세계는 일상에서는 결코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작가의 긴밀한 고유성으로 발견된 포월(蒲月)적 일상의 공간이다. 이 포월성은 일상 너머를 개입시키면서도, 언제나 일상 자체에 의존해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이는 비일상적 초월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정경미의 포월로서의 일상은 결코 모던 아트의 화두였던 반 일상성이 아니다. 전술했듯, 일상은 도주해야만 할 저주받은 시공이 아니라, 그 안에서 기적을 경험해야 하는 필연적 장이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승부를 겨루어야 할 전장이기 때문이다. 이 포월적 일상에 의해서만 일상은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에 다가설 수 있다.
 정경미의 회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출구며 창(窓)이다. 여기서 벽은 막힘이 아니라, 복수개의 출구를 담지하는 열림의 기제가 된다. 그 각각의 창들은 일상성에 잠재하는 의미가능성의 개수들이다. 단지 벽으로 보이는 것 안에 작가는 얼마나 많은 열림들을 구성해 놓는가! 또 각각의 열림들은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서로 다른 작은 운명적인 이야기들의 모임으로 허용되는 것인가! 각각의 창들은 마치 이편에서 저편으로, 현재에서 초월로 건너가는 제한된 통로들 같다. 그것은 때로 마치 우리 존재 내부의 지도 같기도 하다. 아마도 각각의 열림들은 우리 그리움과 열망, 상처에 대한 부응들일 것 같다. 우리는 이 영적인 창들을 통해 평범성 속에 잠재하는 의미의 결집을, 일상성 속에서 기적이 지지되는 은혜(grace)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정경미는 막힌 것들을 통해 막힘이 부재하는 세계를 구성해 나간다. 그의 물은 고여있는 대신, 지속적으로 계단을 적시면서 흘러내린다. 그 흐름에 의해 세계는 부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곧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회화가 이런 흐름, 열림의 중개자를 자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결국 정경미의 세계는 보이지 않은 세계와 보이는 세계의 새로운 연관성을 찾아내는 시도이다. 이 두 세계는 서로 연관되어 있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반영한다. 우리의 일상이 시시해지거나 황폐해지는 것은 우리 심성(心性)의 상실과 황폐를 반증하는 것일 뿐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문명이 지속적으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동거에 실패하는 이유는 우리의 사유와 감각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도 사실이다. 보이는 세계는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속하고 제한한다. 메마른 풍경은 건조한 심성을 부추긴다. 비극적 사건들은 존재 내부의 습기를 증발시킬 것이다. 존재의 깊은 내면과 외부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정경미의 회화는 이 비밀을 일상과 일상을 넘어섬에 적용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도주와 일탈은 어리석고 무책임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가능하지 않은 답이다. 이제 진정 답이 필요한 시점이고, 따라서 다른 모색들이 소개되어야 한다. 물론 이는 정경미의 회화가 스스로 놓이고자 하는 지평이기도 하다. 

 

 

 

Our everyday life is full of amazing things. A glass of water, a ray of sunshine, leaf, caterpillar, flower, laughter, a rain drop…everything is a miracle. The power of the universe, the greatness beyond existence, and transcendental dimensions are perceived through every moment in our lived world. Everyday, from sunrise to sunset, is the accumulation of open moments that make us to listen to its greatness. Mysterious miracles are present in the everyday world where we are embedded. The possibility of being emancipated exists at the center of our life. The reason why we are not able to see the greatness of the everyday life is our dull sense. What make everyday life banal are our distorted perceptions. The art of Jung Kyung-Mi starts with this awareness. Through her art work, Jung Kyung-Mi attempts to show the greatness of everyday life. Her art is drawn from a series of complexity. Her work represents an image consisting of numerous images and tells a story consisting of numerous stories. In her work, she puts together a number of images captured different places at different times into an image in a certain space at a certain time. Through this synthesis, her work introduces us to a new world which never exists but was discovered by her close and unique look. This new everyday world involves the world beyond every life but it is rooted in the everyday life. The new world is not the cursed place from which we want to run away, but the place in which we can experience miracles and adventures. Through experiencing this new everyday world, we can truly understand the meaning of our everyday life.